‘블루아카’의 본질이자, 양 씨의 본심인 “개그”
── 지금까지 ‘블루아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양 씨의 존재가 본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파고들어 보고 싶은데요, 양 씨가 ‘블루아카’에서 가장 크게 성취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양 씨:
유머, 즉 개그입니다. 개그야말로 저의 강점입니다.
개그는 가장 직관적으로 작용하여 플레이어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습니다. 가냘픈 미소녀들이 갑자기 근육질로 변하거나, 복면을 쓰고 은행 강도를 시작하는 등의 엉뚱한 전개는 사람들을 불시에 당황하게 만들고, 작품 세계에 마음을 열게 만듭니다.
개그는 컨텍스트를 쉽게 유지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최근의 콘텐츠는 점점 더 빠르고 짧아지며, 감각적으로 소비되기 쉬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항상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표현을 계속 갈고닦아야 합니다.
사이토우:
저도 인디 게임 프로듀서로서 게임에서 개그의 중요성을 날마다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개그를 게임에 녹여낼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게 또 참 어렵습니다. 개그를 묘사하는 데 어떤 요령이 있을까요?
양 씨:
요령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개그는 재능이 전부입니다.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익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팀의 작가들에게도 “개그를 가르친다”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매니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개그에 능한 작가에게 그 개그의 질에 맞는 활약의 장을 제공해 주는 것뿐입니다.
사이토우:
감각과 본능에 호소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타고난 센스가 중요해지는군요.
양 씨:
그리고 감각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경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전에 슈에이샤(集英社)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독자가 투표하는 인기 투표에서 상위에 오르는 작품은 항상 시리어스한 작품이고, 개그 만화는 표를 많이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문 조사와 달리, 개그 만화 단행본의 판매는 좋았습니다.
개그 만화는 “다들 읽고 좋아하지만, 솔직하게 ‘좋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죠. 순간적으로 읽히고 버려지는 개그는 다른 장르에 비해 낮게 평가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스토리의 일부로서 개그를 실현하려면 그에 걸맞은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냥 개그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진지하고 심오하며,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본 만화에서 예를 들면, ‘은혼’이 좋은 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유머러스한 개그 만화지만, 때때로 진지하고 멋있어집니다. 시리어스 한 부분과 개그 부분을 나누고, 때로는 그것들을 섞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피스’도 개그와 진지함의 배분이 절묘하죠.
저 자신은 개그를 유저의 관심을 끄는 훅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창의적인 면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경쾌함에 일종의 품위를 더함으로써 이야기를 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이토우:
은행 강도 장면에서 시로코와 시로코 테러의 대화가 정말로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양 씨:
그렇게 받아들여 주신다면 기쁘네요.
제 목표는 이야기를 통해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덴 조약편〉에서 히후미가 종이봉투를 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히후미가 아즈사에게 “나는 지금 당신과 같은 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황당한 장면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한 플레이어들은 감동하면서도 웃게 됩니다. 서로 다른 감정의 물결이 동시에 밀려와 자신이 지금 감동하는지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모호한 감정”을 플레이어들이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시로코 테러와의 대화도 그런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 예를 들어, 몸이 갑자기 늘어난다든지, 개그에는 신체성이 따르지만, ‘블루아카’는 하나의 일러스트와 표정만으로도 개그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양 씨:
‘블루아카’에서 주로 사용하는 형식은 말을 주고받고 이루어지는 만담식 코미디입니다. 이는 매체나 장르에 의한 제약도 큽니다. 만약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동작을 많이 활용한 개그를 묘사했을 겁니다.
만담 스타일이 된 것은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텍스트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최적 해법이었기 때문이지, 그 스타일을 처음부터 추구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닙니다.
── 제약이 있기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표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얼굴 연기’가 그렇습니다. 특히 저는 게헨나의 급양부 후우카가 미식연구회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보여주는 표정을 좋아합니다.
양 씨: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일러스트의 포즈를 변경하는 것은 큰 일이지만, 표정만 바꾸는 것은 비교적 코스트가 적게 듭니다. 그래서 ‘블루아카’의 일러스트레이터분들에게 캐릭터를 그린 후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후우카를 예로 들어주셔서 재미있네요. 후우카의 경우, 담당 일러스트레이터인 누들님이 우리가 특별히 주문하지 않은 표정까지 “마음에 들면 사용하세요”라며 많이 그려주셨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들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블루아카’에는 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개그 전문 캐릭터는 거의 없습니다. 개그로 보이는 캐릭터도 반드시 개그와 시리어스의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이런 내면의 다층성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나요?
양 씨:
물론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은혼’이 좋은 예입니다. 그 만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개그와 시리어스의 두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 창조에는 많은 스태프가 관여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제로 하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게 개그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세계관”입니다. 그런 세계관에서 태어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부에 개그 요소가 포함됩니다.
사실, 캐릭터의 매력은 “끌림”에서 비롯됩니다. 의외성이라고도 할 수 있죠. 현실에서도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받는 지속적인 흥미 덕분입니다. 그 인간적 흥미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 갖고 있는 기대나 예상을 약간 벗어나기 때문에 생깁니다.
기호화된 캐릭터는 인격이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플레이어의 예상을 벗어난 묘사를 하기가 쉽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코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트 디렉터에게 제작을 의뢰할 때 “청순, 순수, 가련” 같은 전형적인 청순 캐릭터를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도중 점점 비틀려서 저런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방법론의 공개라기보다는, 제가 비뚤어진 인간이라는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이토우:
‘블루아카’의 스토리나 세계관에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개그가 가능한 세계”와 깊은 상관이 있지 않을까요?
양 씨:
엄격한 세계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잊지 않기 때문에 개그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블루아카’를 만들 때, 당시에 유행하던 음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에 영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주얼적으로나 스토리적으로나 마찬가지입니다.
개그와 조크는 윤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금기나 금지에 일부러 다가가 장난을 치는 것이 개그의 본질입니다.
금기가 허용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다소 낙천적입니다, 란 것입니다. 스토리나 설정으로서가 아니라, 더 추상적인 영역의 이야기입니다.
── ‘블루아카’의 개그는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져서 인터넷 밈으로 재생산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팬덤에서는 수영복 호시노가 타이틀 화면에서 “가만히 있는데도 더워~(우고이떼 나이노니 아쯔이요~)”라고 투덜거리는 대사가 크게 유행해, 많은 MAD 영상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양 씨:
수영복 호시노의 그 밈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이상, 피드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유저들의 반응은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만들어내는 밈은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지만, 콘텐츠는 수용자에 의해 창발적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제작자로서 그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특히 수영복 호시노의 경우, 성우를 맡아주신 하나모리 유미리 씨의 명연기에 크게 의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우 녹음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Yostar의 일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한국에서도 디렉션을 합니다.
거기서 성우분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연기를 해주고,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스태프들이 프로페셔널한 작업을 하고, 일본 유저분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여러 주체들이 개입하면서 우연히 생겨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연의 연속도 운영형 서비스의 재미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팬들과 크리에이터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함께 키워갑니다. 팬들과의 소통은 우리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힘을 얻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와 같은 것이죠.
‘블루 아카이브’를 관통하는 사상
사이토우:
‘블루아카’는 플레이어를 선생님이라는 입지에 이입시키는 데 능숙한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자신인 것”을 어느 정도 의도해서 플레이어에게 체험하게 하고 있나요?
양 씨:
우리는 선생님의 성격이나 특징을 너무 많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선생님에게 감정 이입을 쉽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선생님의 캐릭터가 모호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플레이어의 아바타이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큐라레’에서는 플레이어의 시점, 즉 주인공의 시점을 미소녀 캐릭터 본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모든 시나리오에 주인공이 등장해야 했고, 그로 인해 극작이 제한되었습니다.
‘블루아카’의 선생님은 플레이어의 감정 이입을 받는 동시에, 스토리 상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서 개별 소녀들의 이야기를 지켜봅니다. 이 선생님의 위치가 현재와 같은 군상극을 실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사이토우:
저도 선생님의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모습에 반해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도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바랄 정도로요.
양 씨:
플레이어가 아바타인 선생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블루아카’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며, 작품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저 자신도 플레이어 여러분께 감사와 동시에 책임을 느낍니다.
저는 이 세상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해 “책임감 있는 어른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책임을 지는 어른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기 위해 ‘블루아카’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의문들은 어디까지나 지문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이토 씨가 “저도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라고 느낀 그 마음은 존중합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갔을 때, 그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환원해 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인간입니다.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위대한 무언가에 대한 욕구와 갈망은 어디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으로 있길 바랍니다.
니체의 말처럼, 자기 내면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면 희망에 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블루아카’가 훌륭한 점은 특정 문화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감동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보편성을 얻을 수 있었나요?
양 씨:
오늘날 “책임감 있는 어른의 부재”는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주제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유사한 오타쿠 문화를 소비하는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보편성은 제작의 핵심 부분에서 의식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블루아카’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문학의 영역으로 가버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예술을 하려는건가?”라는 비판을 받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엔터테인먼트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오타쿠 문화에서 문학성, 엔터테인먼트성, 보편성, 주제라는 개념은 개념은 때로 혼연하게 겹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양 씨도 팬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안노 히데아키 감독. 그의 작품에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전후 일본적인 주제가 엿보이고, 동시에 그것은 어느 정도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에반게리온’은 스펙터클 넘치는 거대 로봇 SF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블루아카’와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에바’에도 “즐거움”과 “질문”이 공존합니다. 90년대에 ‘에바’가 유행했을 때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엔터테인먼트의 흐름이었죠.
양 씨:
흥미롭군요. 사이토 씨가 말씀하신 내용은 제가 늘 깊이 탐구해온 주제와 겹칩니다. 이 기회를 빌려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자신을 “오타쿠 문화의 이방인”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문화든 처음에는 그것이 태어난 나라나 지역의 로컬 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보이는, 아이들이 어른들(아버지)이 만든 세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제는, 사이토 씨가 말씀하신 대로 전후 일본 특유의 질문일 것입니다.
또한, 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인간성이 반영됩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아버지가 군수 공장에서 일했던 모습이 그의 작품 ‘너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아버지, 카츠이치의 모습에 반영되었고, 안노 감독의 아버지가 의족을 착용했던 것이 무엇인가 부서지거나 결여된 캐릭터상에 반영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문화적, 작가적인 로컬함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부재”라는 주제는 일본 오타쿠 문화에서 어른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 기본적인 주제이면서, 그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켜 오늘날까지 지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오타쿠 문화에서 제기되는 일본의 문제와 한국인인 제가 바라보는 사회의 문제는 공통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안노 히데아키 작품을 예로 들면, 저는 먼저 11살 때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그 후 중학교 2학년 때 ‘에반게리온’을 경험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일본의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들에 열광하면서도, 어딘가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필터를 통해 즐겼습니다. 일본 사회에 던진 문제 제기를 한국 사회에서 생각한 것이죠.
즉, 일본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일본적인 주제를 관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고 저를 포함한 한국과 중국의 오타쿠들은 “오타쿠 문화의 이방인”이며, 그 “이방인”으로서의 감성과 위화감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한 로컬인 문화가 국제적인 인기를 얻어 다른 문화권에 들어왔을 때에, 그 토지의 인간이 가지는 시점으로부터 재해석되어 새로운 작품으로서 창출되어 가는 것은 드물지 않습니다.
미국의 서부극에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서부극, 마카로니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이 그 대표적인 예죠. 우리가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도, 바로 마카로니웨스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카로니웨스턴의 비유는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카로니웨스턴의 흐름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같은 이탈리아 감독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를 기용해 서부극을 찍고, 당시 미국에서 지배적이던 윤리관이나 가치관을 뒤흔들었습니다.
즉, 서부극을 창출한 미국인들을 이탈리아인의 시선으로 놀라게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서부극이다”라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일본 팬을 모은 ‘블루아카’는 정말 마카로니 웨스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작자들 자신은 반드시 미국에 대한 얼터너티브를 강하게 의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로서 재미있는 작품을 목표로 한 결과, 우연히 그런 비평성도 획득한 것이죠.
양 씨:
문화의 경계 넘기와 혼합은 오타쿠 문화에 있어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중국과 우리 한국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임으로 말하자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모아 전투를 벌이는 소셜 게임 장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담은 작품들이 글로벌하게 수출되고 확장됨에 따라, ‘블루아카’와 같은 새로운 국가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게임들이 등장하여 현재의 오타쿠 문화 상황을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오타쿠 문화의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코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과거 오타쿠 문화의 주류였던 일본에 대한 “타인”로서, 메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외부에 서서 세계적인 큰 흐름에 참여하고, 우리도 그 문화를 확장해 나가고 싶다는 바람에서의 “이방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블루아카’의 선생님을 가부장제 안에서의 사적인 부자 관계가 아니라, 더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존재로 회수하고자 했습니다.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하는 구조는 부자 관계와는 또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하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캐릭터를 인간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정보입니다. 캐릭터는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캐릭터는 인간이 투영된 존재입니다. 캐릭터는 우리 자신을 반영한 것이며, 우리는 캐릭터가 경험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블루아카’에서는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포함해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마케팅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카나 사오리, 그리고 하루나 등 악당으로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플레이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녀들이 살아가는,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세계를 “진짜”인 것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랍니다.
결점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이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진실성(verisimilitude)을 가지며, 애정을 쏟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캐릭터들을 돕고, 선생님 또한 도움을 받는. 그런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 정말 ‘블루아카’의 캐릭터들이 가진 그런 인간성이 유저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카나 사오리, 그리고 하루나 등의 악당”이라고 하셨는데, 그 줄에 하루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하루나 자신도 조금 놀랐을 것 같네요 (웃음).
양 씨:
하루나는 어떤 의미에서 반성하지 않는 악당입니다. 아니, 자기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지한 의미의 악당은 아니지만, “이런 캐릭터를 정말 플레이어들이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때문에 제 마음속에서 미카와 사오리와 같은 부류로 분류되게 되었습니다.
사이토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블루아카’라는 제목에는 “청”── 즉 “청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선생님은 이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 청춘이라는 것을 지키고 있는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알려주세요.
양 씨:
저는 이제 43살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젊은이로 볼 수는 없죠. 하지만 젊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청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가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청춘은 왜 지켜져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이유나 근거를 플레이어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사실, 그 근거는 제 안에 없습니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입니다. 플레이어 자신이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유저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게임 설계의 실패일 것입니다.
사이토우: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도 용기를 내어 청춘을 지키겠습니다.
──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양 씨:
‘블루아카’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블루아카’는 회사의 콘텐츠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회사에 소속된 회사원입니다.
블루 아카이브는 저와 회사 간의 근로 계약에 따른 결과물입니다. 이 무미건조한 사실이 제 노력을 자극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저 = ‘블루아카’가 아닙니다. 우리는 팀으로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블루아카’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고생해서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저 자신은 물론, 총괄 PD 김용하 씨, 게임 디렉터인 임종규 씨, 아트 디렉터인 김인 씨, 프로젝트 디렉터인 박병림 씨, 시나리오 라이터 팀의 여러분, 작곡가 여러분, 아티스트 여러분… 정말 이름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회사 내외의 분들에게 지지를 받아 ‘블루아카’는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블루아카’에 대한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한편으로, 그런 호의에 안주하여 제가 어디선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좌우명인 부처님의 격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모든 현상은 소멸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대반열반경)
한 번 말문을 열자 청산유수, 만화부터 철학까지 방대한 지식을 종횡무진 인용하며 멈추지 않는 양 씨의 토크. 우리는 그 지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이야기에 압도되었지만, 그 안에 양 씨의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동료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회사원일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양 씨이지만, 그의 지성과 열정이 없었다면 ‘블루 아카이브’의 높은 완성도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캐릭터를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라는 그의 바람은 과연 유저들에게 전달되고 있을까? 아니, ‘블루 아카이브’를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그 물음은 불필요할 것이다.
문학자에서 게임 개발자로, 2000년대 오타쿠에서 틱톡 시대의 크리에이터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을 사랑하는 “오타쿠 문화의 이방인”에서 한국의 게임판 “마카로니웨스턴” 현상의 주역으로. 양 씨는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블루아카’도 국경과 시대를 넘어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투명함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양 씨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인터뷰 설정에 힘써주신 Vittgen Inc. 대표 배상현 씨와 통역을 맡아주신 rondo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Indie Intelligence Network”에서는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장편 취재 기사를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