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마치 Project Moon의 세계가 그대로 구현된 공간이었다. 장엄한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시크한 나무 패널의 벽, 천장에는 바퀴 등으로 장식된 따뜻한 조명, 바닥에는 세련된 가죽 소파, 책장에는 한국어판 『백경』…. 어딘가에서 피아노 선율에 맞춰 환상적인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앤티크 스타일의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인디 밴드 Mili가 부른 『Library of Ruina』의 주제가 ‘String Theocracy’가 재생되고 있었다.
세련미가 절정에 달한 이 장식들은 해적선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그 해적선의 선장이 바로 김지훈. 그는 학생 시절에 게임 스튜디오 Project Moon을 설립하고, 『Lobotomy Corporation』, 『Library of Ruina』, 그리고 『Limbus Company』라는 공통된 세계관을 지닌 세 개의 게임을 히트시킨 한국 게임 업계의 신예다.
가혹하고 강렬한 것으로 알려진 Project Moon의 작품들을 창조해낸 그가 어떤 여정을 거쳐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예술”이자 동시에 “산업”인 게임업계의 거친 파도 속에서 CEO로서 어떤 항로를 설정해왔는지 궁금하다.
Indie Intelligent Network 취재팀은 이 거친 “선장”의 등장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긴장감을 안고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따옴표: 본기획은 「NEEDY GIRL OVERDOSE」 「Touhou Luna Nights」등을 프로듀싱한 인디 게임 레이블 「WSS playground」대표의 사이토우 다이치가, note에서 1,500명의 구독자를 모은 게임 비평 매체 「게임 세미나」를 주최하는 Jini와 함께, 인디 게임 제작에 도움이 되는 지견=Intelligence를 획득하기 위해 100% 포켓 머니로 세계 각지를 취재해 도는, 차세대의 게임 저널리즘 「Indie Intelligence Network」의 일부입니다. 기사는 여기 ‘전패미니코게이머 (전격 + 패미통/파미쯔 + 니코니코 + 4Gamer)’ 외에 영어, 중국어 매체에도 동시 번역되어 게재될 예정입니다.
하 내용에는 ‘Library of Ruina’’의 결말까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획, 편집, 듣는이/Jini
듣는이/사이토우 다이치
집필/치바 슈우
촬영/이요다 아키히코
한국어 번역 / 아마노
고난과 시련의 소년 시절
김지훈:
김지훈입니다. Project Moon의 대표이자 디렉터,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Lobotomy Corporation』(이하 『Lobotomy』), 『Library of Ruina』(이하 『Ruina』), 그리고 『Limbus Company』(이하 『Limbus』) 등의 타이틀을 제작해 왔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유미:
이유미입니다. 시스템 기획 팀의 팀장으로, Project Moon의 창립멤버 겸 시스템 기획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WSS Playground 대표, 사이토우 다이치입니다. 이번에는 Project Moon 작품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리고 한일 신흥 게임 스튜디오의 대표로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Project Moon의 리더이신 김지훈 대표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어떤 계기로 게임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김지훈:
저는 1992년생으로, 올해 32살이 되었습니다. 게임에 처음 빠져들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PC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Steam이라는 곳에 ‘Counter-Strike’나 ‘Half-Life’ 같은 재미있는 게임들이 있어”라고 알려주면서 게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때 만난 ‘Half-Life’는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와 동시에, 영화를 자주 보기도 했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에 다니며 주당 두세 편씩 영화를 빌려 보곤 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거의 게임과 영화에 푹 빠져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작품을 접해 오셨군요. Project Moon의 작품에는 일본인으로서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일본 작품에도 영향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지훈:
물론입니다. 저는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합니다. 원래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을 보긴 했지만, 진정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에 만난 『천원돌파 그렌라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을 찾아보며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제로의 사역마』, 『러키☆스타』 같은 작품들이나, 드라마로는 『밤비노』, 『전차남』, 『꽃보다 남자』 같은 것들을 탐닉하듯이 봤습니다.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게 된 계기는 『그렌라간』이었지만, 취향적으로는 러브 코미디나 “일상물”이라 불리는 장르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세계의 존망을 건 거대한 액션보다는, 일상에 뿌리내린 대화나 가벼운 농담의 주고받음에 더 매력을 느끼는 성격입니다.
이런 취향은 게임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일본 게임은 그런 대화의 교류가 정말 좋죠. 예를 들어,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의 섬세하게 다듬어진 대사는 지금도 깊이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Limbus Company』의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유명한 세계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문학에도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으셨나요?
김지훈:
물론입니다. 『Limbus』에서 오마주한 작품들은 모두 저에게 있어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들과도 같은 작품들입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친숙했고, 아동용 명작 문학 전집을 비롯해서, 교양을 동경하던 청소년 시절에는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문학 작품 중에서 베스트 3을 꼽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특히 『데미안』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사춘기 시절에 읽고 큰 위안을 얻은 책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죠. 지금도 때때로 다시 읽곤 합니다.
『이방인』은 중학생 때 무리해서 읽으려고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언젠가 이 책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관련 서적이나 해설을 읽는 과정에서 실존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철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임, 영화, 문학 등 정말로 다양한 장르의 픽션들에 깊이 빠져들었던 경험이 현재의 창작 활동의 기반이 된 것 이네요.
김지훈:
이것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것인데요…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로부터 심리적, 신체적인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픽션이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감정이나 가족의 모습이나 의미를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일상적인 대화 장면에 끌리는 경향도 어쩌면 그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릴 때는 하루빨리 집을 떠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게임 제작에 매달린 것도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일념 때문이었죠.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 적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분노와 같은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두운, 고통스러운 기억. 그것이 저의 창작의 근본입니다.
──그렇지만 Project Moon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들입니다. 비극적이면서도 어딘가에 희망을 남겨둡니다.
김지훈:
저는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밝히는 아름다운 인간 찬가를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Ruina』를 개발할 때도 앤젤라와 롤랑, 이 두 캐릭터에게 깊이 감정이입하며 그들이 힘든 과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플롯을 썼습니다.
게임이 출시된 후, 『Ruina』를 플레이한 유저들로부터 “앤젤라의 행동이 너무 급격하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건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지만, 제 마음속에 있던 과거를 극복하고 싶다는 기도가 어쩌면 두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저도 『Ruina』를 플레이하면서 앤젤라에게서 성급함을 느낀 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뜨거운 감정에 휩쓸려 가는 듯한 느낌이었고, 앤젤라라는 거대한 존재에 당황하면서도 공감을 느꼈고, 마지막에는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은 여쭤보기 조금 그렇는데… 앤젤라라는 캐릭터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나요?
김지훈:
“플레이어가 용서를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그것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언젠가는 용서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진심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용서하고 싶다”는 갈등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겪어본 경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앤젤라와 롤랑, 그리고 『Ruina』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담은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그 “용서”를 둘러싼 갈등이었습니다.
동시에, 앤젤라 자신도 플레이어의 소원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계는 부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정을 하나하나 해결하려고 해도, 새로운 문제가 계속해서 나타나며, 결국 사람들은 “어차피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체념을 품게 됩니다. 앤젤라도 마찬가지로, 작중 세계의 현실에 의해 좌절된 여성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정에 의해 좌절되고, 그 결과 성급해진 여성을 과연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바로 앤젤라입니다.
Jini: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소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저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제 친구 중에도 Project Moon의 팬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은 가정 내 폭력을 당해 일본의 쉼터에서 지내야 했던 경험이 있는 여성입니다. 물론 김 대표님의 경험이 작품의 일부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전 세계에는 비슷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분들에게 김 대표님의 작품이 큰 위로가 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습니다.
김지훈:
작품에 개인적인 인연을 느껴주셨다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의 경험은 다른 창작자들과 마찬가지로 창작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반영된 것에 불과하며, 특정한 주제나 사람들의 공감을 의도적으로 노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내면 깊은 곳에 있던, 제가 쓰고 싶었던 것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전 세계의 팬들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데, 그 중에는 가족 문제를 작품에 투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플레이어분들로부터 “힘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를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하는 것은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설계하신 부분인가요?
김지훈: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는 『Ruina』의 극중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선택지입니다. 이 문제는 저에게도 매우 고민스러운 부분이었기에, 플레이어 여러분께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택지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서”가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를 품고 나아간다면, 세상에 남는 것은 비극뿐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용서하지 못한” 내가 있습니다. 용서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저는 플레이어 여러분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선택지는 플레이어에게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선택지가 존재하기에 물음이 생기고, 그 물음에 대해 플레이어는 답을 내야 합니다.
──앤젤라와 다른 캐릭터들은 그런 선택을 한 후 개인적인 문제를 극복해 나가면서, 사회에 대해, 특히 도시나 날개와 같은 대상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도시가 불신, 빈곤, 증오로 가득 찬 장소로 묘사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김지훈:
여기에서도 제 개인적인 세계관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겁이 많고,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강하며, 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잔혹한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물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도 일시적으로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겠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곧 배신당할 수도 있고, 외로운 곳에서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 속에서도 따뜻함이나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세계는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들이 뒤섞인 세계입니다.
저는 한국의 도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 무대도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설정하게 되고, 의식하지 않더라도 한국적인 시각이나 사고방식이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콘텐츠로서 다양한 시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은 항상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전반적으로 본 것이 아니면 그려낼 수 었습니다. 설령 그려냈다고 하더라도, 납득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려내지 못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향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입니다. 보르헤스는 대학 시절에 만나게 되었고, 그때 마술적 사실주의 방식에 세계 구축 방법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서 일상적인 단어와 환경을 사용하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판타직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 개인적인 감각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만들어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만남, Project Moon의 시작
──창작의 핵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김 대표님께서 Project Moon을 설립하고 현재와 같은 발전을 이뤄내기까지의 경위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지훈:
중학교 3학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너에게는 뭔가, 인생에 대한 의욕은 있는것인가?” 어차피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는 많지만, 특히 게임이 가장 좋았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한국의 『악튜러스』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2부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중간에 중간에 큰 반전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판타지로서 묘사된 세계가, 제2부에서는 디스토피아 SF로 변하는 것이죠. 이 장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게임의 스토리텔링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동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게임 업계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진학 시에도 게임과 관련된 분야를 선택하신 건가요?
김지훈:
대학에서는 컴퓨터 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우선, 게임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프로그래밍에 필수적인 수학을 치명적으로 못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한 후, 아주대학교의 미디어학과로 다시 입학했습니다. 아주대학교에는 게임 전문 코스와 클럽이 있었고, 유미 님를 포함한 현재 팀 멤버 몇 명과도 아주대학교의 게임 개발 클럽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훗날에 Project Moon의 핵심 멤버들이 대학 시절부터 모여 있었던 것이라니, 놀랍습니다.
김지훈: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중단하는 것을 반복했죠. 실패의 원인은 당시 제 인격적인 미성숙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팀과 잘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4학년이 되었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게임 하나 조차도 완성하지 못한다면, 내게 게임 개발자를 꿈꿀 자격은 없는게 아닐까?” 그래서 결심을 하고, 클럽에서 유미 님를 포함한 4명의 멤버를 모아 마지막 대승부를 걸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Lobotomy Corporation』입니다.
──김지훈 대표님이 재학 중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유미 님도 곁에서 지켜보셨겠죠. 유미 님의 시각에서 김지훈 대표님은 어떻게 보였나요?
이유미:
같은 클럽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대학 2학년까지는 제가 주로 혼자서 Unity를 사용해 제작을 해왔기 때문에 대표님 와의 관계도 얇았어요. 그가 겪는 수많은 난관을 외부에서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죠.
처음으로 팀에 참여한 것은 『Lobotomy』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Lobotomy』을 졸업 작품으로 생각했어요. 졸업 후에는 그냥 기존의 게임 회사에 취업하려고 했거든요. 한국의 게임 회사는 포트폴리오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인상 깊은 졸업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있었죠.
그런데…… 대표님은 직접 게임 회사를 차리려고 하셨네요.
──아하하, 자신감이 넘치셨군요.
김지훈:
자신감은 없었어요. 그동안 계속 실패했으니까요. 『Lobotomy』도 유저분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성공을 예감하기 시작한 건, Tumblbug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실시했을 때입니다.
460명 이상이 1300만 원을 후원해 주셨어요. 당시 우리에게는 대반향이자 큰 돈이었습니다. 이 결과를 보고, 저를 포함한 팀 전원이 “이 게임은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죠. 그래서 2016년에 Project Moon을 법인화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유미 님는 김지훈 대표님 옆에서 창립 초기부터 Project Moon을 지원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유미 님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지훈:
유미 님은 Project Moon에서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분입니다. 스토리나 아트의 초기 아이디어에 대해 유미 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작품 제작에 큰 참고가 됩니다. 물론, 반드시 그녀의 의견만이 전부는 아니며, 제 고집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때로는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항상 옆에 있어준 소중한 파트너입니다. 예전에는 제 말을 이해 안 해준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누락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유미:
정말로 대학 시절에는 서로 고집이 세서 싸움이 끊이질 않았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네요… 이제는 둘 다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유미 님이 보기에 회사에서 김지훈 대표님은 어떤 인상인가요?
이유미 :
절대 군주 같다고 할까요. 대표님은 이 회사와 작품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의지 같은 존재입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에서는 미야자키 히데타카 씨가 생각한 이야기를 다른 시나리오 작가들이 듣고 써 내려가는, 마치 신탁을 전하는 듯한 개발 체제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표님의 스타일도 그와 비슷합니다. 대표님이 쓴 시나리오나 플롯을 보고, 라이터들이 대사와 시츄에이션의 문맥을 잘 보충하며 자신만의 이매지네이션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죠.
이렇게 여러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쳐 완성된 이야기라, 플레이어들도 해석에 참여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맥을 보완해 나간다는 것은, 김지훈 대표님의 머릿속에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여백을 채워가는 느낌인가요?
김지훈:
예를 들어, 보스 캐릭터를 으스스하고 공포를 주는 존재로 만들고 싶다고 가정해 보죠. 제가 대략적인 이미지 방향을 구상하고, 그걸 유미 님들에게 전달하면, 그 보스의 스킬 패턴이나 스킬의 명칭을 확정하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이후, 시나리오 팀, 연출 팀, 아트 팀, SD 팀에서 각 팀의 팀장과 팀원들이 제가 요청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작업 과정과 결과를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게임이 만들어집니다.
성공, 그리고 변화.
── 『Lobotomy』는 Project Moon의 첫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판매 초기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지훈:
판매수가 처음으로 급격히 증가한 것은, 유명한 유튜버가 게임을 방송해 주셨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순식간에 수천 개가 팔렸습니다. 하지만 좋은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고, 점차 판매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조했던 시기에는 판매 숫자를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어요.
──이해합니다. 저도 『NEEDY GIRL OVERDOSE』 개발중에 자금이 바닥나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을 때, 체중이 7킬로그램이나 줄었어요.
김지훈: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달이면 회사 계좌에서 자금이 바닥날 시점에서, Steam에 “더 이상 제작을 지속하기 어려우니, 크라우드펀딩 에서 약속한 콘텐츠를 구현한 후, 그 이상의 개발은 진행하지 않겠습니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이제 끝이구나”라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발표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Lobotomy』를 아쉬워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각국의 팬 커뮤니티가 SNS에서 작품을 추천하거나, 게임을 추가로 구매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따뜻한 지원 덕분에 판매랑이 회복되어 구원받았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이었기에, 팬들의 사랑으로 구원받은았다. 정말 아름다운 에피소드인거 같습니다. 특히 어떤 지역에서 잘 팔렸나요?
김지훈:
특히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것 같습니다. 특정 국가나 언어권을 염두에 둔 마케팅은 하지 않았지만, 테이스트가 잘 맞았던 것 같니다.
『Lobotomy』는 처음에 『Adventure Time』 같은 미국식 카툰 스타일로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잘 맞지 않아 다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시아적인 애니메이션 색을 더 강하게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는 마케팅상의 의도라기보다는 제 창작 감성에 따른 변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도 잘 호응을 얻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Lobotomy』의 성공 이후, 『Ruina』와 『Limbus』 등 매작마다 성공을 거두셨고, 그에 따라 회사의 규모도 단계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 이정표를 지나면서 팀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규모에 따라 매니지먼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지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 시절 『Lobotomy』팀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오리지널 멤버는 4명이었습니다. 이후 학교 내외에서 몇 명을 추가로 모집하여 최종적으로 9명으로 게임을 완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재를 모으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공개 채용을 하기도 했고, 인근 대학에 가서 적합한 사람을 찾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기도 했고…대학 축제에서 흥미로운 아트를 전시하는 걸 보고 채용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Ruina』부터는 주로 Gamejob이라는 한국 게임 산업 전문 채용 사이트를 통해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쯤에는 20명 정도의 규모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약 50명이 『Limbus』의 운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8년 동안 4명에서 50명으로 팀이 성장한 셈이군요. 당연히 관리 방식이나 대표님의 업무도 변화했을 것 같은데요.
김지훈:
저는 원래 팀 멤버들을 단순히 서류상의 숫자로 보지 않고, 각각의 인격체로서 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세심하게 소통하고, 멤버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나 멤버 수가 20명을 넘기면서부터는 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미:
예전의 그는 정말로 마이크로매니지먼트에 집착했어요. 다른 사람의 방식으로 실패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의 방식으로 실패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모든 걸 직접 장악하려는 모습이었죠. 리테이크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꽤 진척된 작업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했고, 심할 때는 UI 담당자 옆에 앉아 픽셀 단위로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김지훈:
그런 무리가 쌓여 결국 제 심신이 약해지게 되었죠.
『Limbus』를 출시하기 전쯤에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개선점을 팀에 전달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왼쪽 눈 뒤쪽에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즉시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지만,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트레스성”으로 진단받았고, 뇌졸중 직전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정신적인 압박이 컸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놀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업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팀원들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지 않고, 각 팀장에게 업무상의 판단을 맡기는 쪽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유미:
대표님의 방향 전환에 따라, 저도 팀장 역할에 본격적으로 전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에 시간을 쏟다 보니 실무를 할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도 팀원들에게 제 업무를 분담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내에서 직무 분담이 잘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김지훈 대표님는 여전히 시나리오 원안과 CEO로서 매우 힘든 업무를 계속하고 계시죠. 어떤 식으로 멘탈 관리를 하고 계신가요?
김지훈:
자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할 만큼 잘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어서, 휴일에도 불안으로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몇 년째 받고 있으면서, 제 스트레스를 관리할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있습니다.
힘든 업무가 괴롭냐고 묻는다면, 괴롭다고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방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저”하고 잘 어울려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법은 게임입니다. 재미있는 게임에 몰입하면,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고, 불안과 피로도 사라집니다. 최근에는 『ELDEN RING』이 좋았습니다.
──좋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말, 잘 이해합니다. 최근에는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이 잘 없어서 고민입니다만…
김지훈:
저도 『ELDEN RING』의 DLC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Jini:
게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Project Moon 작품에는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 같은 디자인이 자주 보입니다. 『Library of Ruina』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보드 게임도 좋아하시나요?
김지훈:
네, 특히 학생 시절에는 보드 게임에 몰두했었고, 지금도 애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Library of Ruina』라는 제목은 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놀기 위해 자작한 TRPG 『Library of Babel』에서 유래했습니다.
취미로 즐기는 것은 물론, 보드 게임은 비디오 게임 제작에도 도움이 됩니다. 『Ruina』를 제작할 때도 매주 팀원들에게 보드 게임을 추천하고, 그 디자인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게임의 원칙과 규칙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인디 게임 스튜디오는 투자를 받아야 할까?
──CEO로서의 입장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최근에 대형 게임 회사인 Devsisters로부터 투자를 받으셨죠. 이 결정에는 어떤 판단이 있었나요?
김지훈:
투자에 대해서는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투자 제안은 필요한 시점에는 오지 않고, 필요하지 않을 때 온다”는 것입니다.
Devsisters의 제안을 받았을 때는 『Ruina』가 출시된 직후였습니다. 그 당시 판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Devsisters측 제안은 전략적 투자라기보다는 순수한 재무 투자였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었습니다.
일단 재정적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만약 『Ruina』가 실패하더라도 다음 작품에 대한 출자를 모집할 때, Devsisters로부터 투자받은 이력이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보험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만약 이것이 전략적 투자 ――즉,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투자였다면 거절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투자’는 출자자가 주식에 개입해 경영권을 어느 정도 잡는 것이고, 반대로 ‘재무 투자’는 돈만 제공하고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죠?
김지훈:
맞습니다. “대형 게임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보도만으로는 인수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금을 지원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Devsisters 산하의 벤처 캐피탈입니다. 이곳의 대표님이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이라서, 저희의 걱정거리도 잘 이해해 주셨고, 잘 진행해 주셨습니다.
──일본에도 투자를 받을지 고민하는 인디 개발자들이 많습니다. 다른 회사로부터 자금을 받는 것에 대해 조언이 있을까요?
김지훈: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우선 자금 부족인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투자를 받아야 할 때가 있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경영권의 일부를 넘겨주는 전략적 투자나 퍼블리싱 계약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는 전략적 투자가 더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투자를 받은 후에 개발한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IP(지적 재산) 자체를 통째로 빼앗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군요.
김지훈:
작품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 개발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도 괜찮겠죠. 하지만 제처럼 자신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간섭받고 싶지 않은 타입이라면, 계약 조건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발적으로 투자자를 찾으려 하면 종종 번거로운 조건이 붙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원래 투자자는 스스로 찾으려고 할 때는 잘 나타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Lobotomy』를 제작할 때도 투자를 해줄 만한 회사에 몇 군데 이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투자자 입장에서 크리에이터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지만, 스스로 투자를 원하는 자세를 보이는 크리에이터에게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받아줄게” 정도 되는 태도가 아니라면, 저도 돈을 내고 싶지 않거든요.
김지훈:
저 자신은 누구의 영향 아래 서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도 몇 번 인수 제안이 있었지만, 회사를 팔아서 큰돈을 손에 넣더라도 그 돈으로 다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게임 회사를 새로 만들 뿐 입니다. 머무르든 떠나든 결국 같은 일이라면, Project Moon을 계속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창립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역사를 들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신진 크리에이터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즉, 여러분의 미래는 우리에게도 미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Project Moon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조직으로서의 목표와, 김지훈 대표님 개인의 목표 양면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지훈:
우선 조직, Project Moon의 목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위로 올라간다”는 목표를 각 이정표마다 명확히 설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Ruina』 때는 도쿄 게임 쇼에 출전하는 것과 같은 목표를 설정했죠.
하지만 학생 시절에 그렸던 목표는 대부분 달성해버렸고, 이제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려면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현재의 동료나 팬들을 매우 냉혹하게 배제하고서라도 회사를 크게 키워야 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익 극대화보다는 지금의 멤버들, 그리고 제 자신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의 이상을 쫓아가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회사를 가족처럼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 따뜻함을 게임 산업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그것이 제 과제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는……우선 크리에이티브 면에서는 3D 오픈 월드 액션 RPG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저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고, 팬들과의 소통을 유지하며, 항상 호기심과 재미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게임 크리에이터의 롤 모델은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코지마 히데오 씨처럼 독립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비전을 탐구해 나가는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비유가 아니라, 현실로서의 죽음입니다.
지금은 그냥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창작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두려움 없는 평화로운 경지에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창작과 이야기의 탐구를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의 마지막에 기도하듯이 중얼거리신 김지훈 씨의 이 말에서, 그가 존경하는 헤세의 모습이 떠올랐다.
따옴표: “오늘날, 인간이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죽어간다. 마치 내가 이 이야기를 마친 후에,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것처럼.” (헤르만 헤세, 타카하시 켄지 역 『다미안』 신조 문고)
취재 전에는 회사를 혼자서 강하게 이끌어가는 “선장”을 상상했던 IIN 취재팀이었지만,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탐색하며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고민 많은 한명에 청년이였다.
아티스트와 기업가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하던 독립적인 청년을 구하고, 한국 게임계의 선구적인 인물로 올려놓은 것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인터뷰의 설정에 힘써주신 Vittgen Inc. 대표 배상현 님와 통역을 맡아주신 rondo 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따옴표: 「Indie Intelligence Network」에서는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장편 취재 기사를 게재해 나가겠습니다.